새벽 3시 반,
할머니 혼자 계셨습니다
보일러 수리는 20분이면 끝났습니다.
파트너가 자리를 뜨는 데는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화기가 울렸을 때 이○○ 파트너(54세, 배관·보일러 전문)는 새벽 배달 알바를 마치고 막 집에 들어서던 참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몸을 쓴 터라 어깨가 묵직했습니다.
PanSol 앱 알림이었습니다.
그는 잠깐 멈췄습니다. 1.2km. 영하 11도. 혼자 계심. 다시 재킷을 걸쳤습니다.
열두 번 문자를 보낸 딸
같은 시각, 부산의 최○○(45세)는 잠을 못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혼자 사시는 서울 집에 전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이상했습니다.
괜찮다고 했지만, 어머니 목소리가 이미 떨리고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는 KTX로도 두 시간 반. 새벽 3시에 기차는 없었습니다.
딸은 PanSol 앱을 열었습니다. 오빠가 지난달에 알려준 앱이었습니다. 채팅창에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1.2km 거리 파트너가 응답했습니다.
지금 출발합니다. 약 12분 후 도착 예정입니다.
딸은 전화기를 꼭 쥐고 앱을 계속 바라봤습니다. 지도 위에 파란 점 하나가 어머니 집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파란 점이 움직일 때,
처음으로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영하 11도, 4층 계단을 오르며
이○○ 파트너가 도착했을 때는 새벽 3시 31분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이었습니다. 공구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데, 각 층마다 냉기가 달랐습니다. 4층 복도는 바깥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발소리가 느렸습니다. 할머니가 조심조심 걷고 계셨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할머니는 두꺼운 이불을 어깨에 두르고 계셨습니다. 실내 온도계가 보였습니다. 9도.
추운 사람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보일러는 18분 만에 살아났습니다
점화 퓨즈가 나가 있었습니다. 흔한 고장이었습니다. 공구 가방에서 부품을 꺼내 교체했습니다.
보일러 작동 버튼을 눌렀습니다. 빨간 불이 들어왔습니다. 뭔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할머니가 양손을 모았습니다.
그 말이 그냥 보일러 얘기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 파트너는 영수증을 정리하다가 잠깐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거실 한쪽에 식탁이 있었습니다. 밥그릇 하나가 비어 있었는데, 물기가 말라있었습니다. 어제 저녁인지, 그제 저녁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냉장고 위에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젊은 날의 할머니, 아이들, 가족사진들. 지금 이 집엔 할머니 혼자였습니다.
그는 출발하려다 멈췄습니다.
할머니가 잠깐 머뭇거렸습니다.
수리비 영수증보다 먼저 한 것
이○○ 파트너는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달걀 세 개, 반쯤 남은 된장찌개, 김치. 라면 봉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머니가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이고, 괜찮아요, 이 새벽에 그런 걸."
이○○ 파트너는 이미 냄비를 꺼내고 있었습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창동의 작은 부엌에서 라면 끓는 냄새가 났습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라면을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이○○ 파트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같이 먹었습니다.
밥그릇 하나가 비어있던 그 식탁에, 그날 밤엔 두 개의 그릇이 놓였습니다.
"자식들 멀리 있으니까,
혼자 먹는 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근데 오늘은... 따뜻했어요."
새벽 4시 53분, 부산에서 온 문자
이○○ 파트너가 집을 나서면서 앱으로 작업 완료를 누르자 딸에게도 알림이 갔습니다.
2분 뒤, 문자가 왔습니다.
그 후
이○○ 파트너는 다음날 오전, 평소처럼 일하러 나갔습니다. 어제 일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배가 고파 보이셨어요. 라면 하나 있었고요."
김○○ 할머니는 며칠 뒤 딸이 내려왔을 때 PanSol 앱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거 저장해둬. 혼자 있어도 이제 안 무서워."
최○○ 씨는 그날 이후 매달 어머니 집 정기 케어를 신청했습니다. "멀리 있어서 못 챙기는 게 늘 죄스러웠는데, 이제 조금 마음이 놓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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