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첫날 밤,
보일러가 죽었다
새벽 1시, 영하 13도. 텅 빈 내 방에서 나는 떨고 있었다.
그날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내 이름 석 자만 새긴 현관 키를 손에 쥐었다.
짐을 다 풀었을 때는 밤 11시였다
택배 박스 열두 개, 이불 두 세트, 작은 텔레비전 하나. 5년치 서울 월세 생활을 접고 드디어 마련한 '내 집'. 경기도 끝자락 빌라 2층, 보증금 없이 월세 55만 원짜리 단칸방이었지만 나는 그날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다.
짐을 다 풀고 나서 처음 한 일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눕는 것이었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내 천장. 내 바닥. 내 벽.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몰랐다.
이상한 건 새벽 1시였다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뭔가 이상했다. 처음엔 이사 피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방이 분명히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손발이 시려웠다.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보일러 버튼을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디지털 표시창은 빨간 불빛 하나 켜지지 않고, 그냥 죽어 있었다.
보일러가 고장났다.
영하 13도, 이사 첫날 밤, 새벽 1시.
전화기를 잡았다
제일 먼저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문자를 보냈다.
답은 없었다. 네이버에서 "보일러 긴급 수리 새벽"을 검색했다.
전화를 끊었다. 손이 떨렸다. 춥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새벽 2시, 롱패딩을 입고 바닥에 앉았다
전기장판을 꺼냈다. 이불을 두 장 겹쳤다. 검색을 계속했지만 올 것 같은 곳이 없었다. 오더라도 얼마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출장비만 받고 고치지도 않고 갔어요."
"10만 원 견적이 나중에 50만 원 됐어요."
"연락이 안 돼요."
읽을수록 무서워졌다. 그냥 오늘 밤은 이렇게 자야 하나. 첫날부터 이렇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친구가 몇 달 전에 공유해 준 링크가 눈에 띄었다.
pan-sol.netlify.app
"보일러가 안 켜져요. 이사 첫날인데 새벽이에요."
접속했다. 지도가 펼쳐지고 아래에 채팅창이 있었다. 별 기대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야간 출장비 35,000원, 퓨즈 교체 시 추가 5,000~10,000원 예상.
비용은 수리 완료 후 앱에서 결제됩니다.
숫자가 분명히 쓰여 있었다. 예상 비용이 먼저 나왔다. 나는 연결 버튼을 눌렀다.
새벽 2시 37분, 인터폰이 울렸다
"102호 맞죠? 저 PanSol 파트너 강○○입니다."
방한 점퍼를 입은 50대 남성이었다. 그는 보일러 앞에 쪼그려 앉더니 패널을 열었다.
"아, 여기네요." — 3분도 안 됐다.
"퓨즈 나간 거예요. 이사하면서 전기 많이 쓰다 보면 이렇게 돼요. 자주 있어요."
"한번 눌러보세요."
버튼을 눌렀다. 빨간 불이 들어왔다. 뭔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소리라고 생각했다.
수리비는 42,000원이었다
앱에서 결제했다. 파트너 평점 남기는 창이 떴다. 별 다섯 개를 눌렀다.
"이런 날 도움이 됐으면 됐죠. 첫날 좋은 기억 만드세요."
나는 다시 바닥에 누웠다.
이번엔 따뜻한 바닥에.
내 집에서 처음으로 따뜻하게 잤다.
나중에 알게 된 것들
그 말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새벽이라도 혼자 끙끙 앓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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